데이터라이즈에서의 2021년을 요약하자면, 눈이 높아졌지만 아직 몸이 따라가지 못했던 한 해였습니다. 프로덕트 오너 역할을 맡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제 주관이 점점 뚜렷해지고 제가 생각하는 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익숙해졌는데요. 그 과정에서 감정적인 부분을 잘 제어하지 못하는 등 협업하는 분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일단은 다른 사람들과 최대한 대화를 많이 하면서 그러한 부분을 줄여나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21년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대화를 진짜 많이 한 것 같네요.
또, 제 성격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해 본 해였습니다. 저는 몽상가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큰 그림을 그려보거나 당장은 이루기 어려울지도 모르는 꿈을 상상해보는 것을 즐깁니다. 하지만 상상을 실제로 옮기려면, 구체적인 계획과 디테일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이런 영역은 그 동안 제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제가 상상했던 것들이 차근차근 실물로 나타나는 과정을 경험해보니 연습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 혼자서 하는게 아니라, 회사 동료들이 정말 많이 도와주셔서 점점 나아지고 있습니다.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과 단점을 메꾸는 것 사이에서 어떤 선택이 더 가치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언제 어떤 상황이 터질지 모르는 스타트업 환경이다보니, 제가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도 일해보려 합니다.
프로덕트 오너로서는 주로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했던 해였습니다. 디테일한 부분은 담당하시는 분들의 의견을 최대한 믿고, 의견이 충돌하거나 빠른 결정이 필요할 때 위주로 개입하려고 했습니다. 모두의 서포터가 되어서, 작업하시는 분들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면 좋은 프로덕트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보낸 2021년 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년 한 해 동안 가장 열심히 했던 일은 회의록 작성과 노션 문서 구조 정리가 아닐까 싶네요..
개발자와 분석가로서의 자아는 점점 내려놓고 있는 중입니다. 데이터 분석가로서의 마지막 미련을 정리하고자 네이버 데뷰 발표에 지원했는데 덜컥 선정되어 버려서 9월 이후 지옥의 일정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개발자로서는 여전히 몇몇 프로젝트의 개발을 병행하고 있지만, 이제는 회사에서 제가 개발을 해서 얻는 이점이 크지 않다는 걸 체감하고 있기 때문에 괜히 일 가져왔다가 병목이 되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새로운 기술과 도구를 살펴보는 일은 언제봐도 재밌네요.
1년을 쭉 돌아보면, 일이 힘들었던 기억은 없습니다. 힘들었다면 대부분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생긴 문제들이었지만, 결국 다시 회복할 때도 그 사람들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 회사는 제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는 곳이고, 그래도 될 정도로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어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동시에 달성하기 어려운 조합인 것 같습니다. 덕분에 회사 밖의 사람들을 만나서 회사 이야기를 하는데도 행복해 보인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2021년의 회사 생활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네요.
정리하다보니 뭐 이렇게 많이 했나 싶을 정도로 외부 발표에 적극적인 한 해였습니다. 프로덕트 오너라는 타이틀만 달아놓고 무슨 일을 해야 할지 헤매던 시기이기도 했고, 착실하게 전문성을 쌓아나가는 다른 친구들을 보면서 위기감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발표를 하면 마감 날짜가 확실하게 찍히고, 고퀄리티의 발표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저를 더 극한으로 몰아넣게 되었네요. 그래도 사람들 만나면서 발표자료 많이 봤다는 얘기를 들으니 나름 보람이 있습니다.
2021년 한 해 동안 UX부터 데이터 시각화, 실험, 개발, 인과 모형 등 다양한 주제로 발표했습니다.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깊게 고민하다보니 제품을 기획할 때도 여러 시각에서 살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한 번 발표해 본 주제에 대해서는 보이는 것들이 많아지더라구요.
내년에는 발표를 좀 줄여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설마 이거보다 늘어나겠어요??
블로그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글쓰기 모임인 “글또”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조에서 만난 보경님, 은지님과 이야기하다보니 프로덕트 분석가를 위한 커뮤니티가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함께 만들어보기로 했어요. 데이터 분석이라는 말이 너무 광범위하니 데이터 분석 커뮤니티로는 명확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프로덕트를 만들고 개선하는 과정에서 데이터를 활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분명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기도 했구요. 저희가 생각했던 방향성을 글또 내에 공유하고 거기에 공감해주신 분들이 모여서, 7명의 오거나이저가 프로덕트 분석가를 위한 커뮤니티 PAP(Product Analytics Playground)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오거나이저 분들 모두 일 자체를 잘 하는 분들이십니다. 일을 만들고 굴리는 과정에서 배울 점이 정말 많은 분들이에요. 이런 분들 덕분에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체계가 잡히고 있고, 또 성장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엄청난 시너지를 발생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스터디를 리딩하거나 학회/동아리에서 활동을 해본적은 있어도, 이런 종류의 커뮤니티 활동을 해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는 사람들이 “프로덕트를 위한 데이터 분석” 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모일 수 있다는 것은 참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분명 연말인데 연말같다는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았던 이상한 한 달이었습니다. 코시국이 다시 심해지면서 약속이 자연스럽게 취소되기도 했고, 일도 많아서 정신이 없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다른 점도 있었어요. 연말의 공허함이 없는 이상한 연말이었거든요. 2022년 회사의 목표는 상당히 도전적이고, 제 개인의 목표도 그렇습니다. 부담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적절한 자극이 되고 있습니다. 한 번 제대로 부딪혀 보고 싶은 목표가 생기니, 내년 느끼던 연말의 공허함도 밀려나고 있습니다. 올해는, 적어도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는 쏟아내보려고 합니다. 번아웃이 오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도 저한테 필요한 연습인 것 같구요.
최근 1~2년간 저 자신도 너무 많은 것이 변해버려서, 지금 시점이 인생의 변곡점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의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바뀔 것 같습니다. 뭐, 이건 언제 해도 맞는 말이긴 하네요.
그냥 올해의 제가 도대체 뭘 하면서 살았는지 궁금해서 정리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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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진짜 끝입니다. 회고가 늦어서 글이 올라갈 시점엔 이미 2022년이 되어있겠군요. 모두들 행복한 2022년 보내시길 기원합니다!